하지만 난 네가 입술 자국처럼 새겨질 걸 알았고 나의 모든 후회가 될 걸 알았고 훈연이 이렇게나 길게 남을 걸 알았고 널 오래오래 저주할 걸 알았고 짧은 설렘을 끝낸 네가 날 그리워할 걸 알았고 결국 그곳의 불빛 아래 설 걸 알았고
득도라고 하긴 좀 많이 모자라고 단순한 깨달음이라고 하기엔 뭔가 더 복잡한 1

일을 하다가 미뤄둔 설거지(라고 해봤자 식기세척기에 그릇 넣는 것 뿐이지만)를 하려고 일어났다. 근데 갑자기 엄청 어지럽고 띵해져서 다 넣자마자 후다닥 의자에 앉았다... 그리고 설거지를 하는 동안 득도라고 하긴 좀 많이 모자라고 단순한 깨달음이라고 하기엔 뭔가 더 복잡한 무언가를 떠올려 버렸다.

 

나한테는 초등학교 1학년 때 사귄 아주 친한 베스트 프렌드들이 세 명 있다. A, K, O. A와 K와 나는 같은 반이었고, O는 다른 반이었다. 우리 엄마들은 서로 어떻게 친해졌는진 몰라도 일단 친해져서 어린이 성경공부(이상한 거 아님 그냥 개신교)라는 모임을 주선했다. 우리 넷은 1학년 때부터 5학년 때까지 4년 반 동안 K네 집에서 매주 금요일마다 성경공부를 했다(중간에 목요일, 화요일로 바뀌었던 적도 있음). 선생님은 K의 아빠였고 가끔 우리의 동생들(우리는 다 동생이 하나씩 있었다)이 끼어들기도 했다. 그 4년 반 동안엔 아주아주 많은 추억들이 있었다. 우리 넷의 가족들은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뭉쳤고 무슨 일이 없어도 뭉쳤다. 꼬박꼬박 여름이면 수영장, 겨울이면 스키장. 캠핑도 툭하면 갔다. 서로의 집에 그냥 툭하면 드나들었다. 각자의 부모님이 제 2의 엄마아빠가 되었고, 그애들의 동생들도 다 내 동생들이 되었다. 아무튼 요지는 누군가 이 문단을 읽으면서 상상할 수 있는 것보다도 우리가 훨씬 돈독한 사이라는 것이다. 내 어린 시절의 대부분은 다 그들이라는 것.

 

5학년 여름 O의 가족이 미국으로 이민을 갔다. 난 많이 많이 울었다. 온 가족이 공항에 나가 배웅했다. 그래서 A, K, 그리고 내가 남았다.

6학년 여름에는 A의 가족이 미국으로 이민을 갔다. 충격! 이번에도 온 가족이 공항에 나가 배웅했다. 그래서 K, 그리고 내가 남았다.

얼마 있지 않아서 K가 섬에 있는 학교로 전학을 갔다. 체육복이 정말 못생겼었다... 그래서 나만 남았다.

 

그 땐 나만 남았다는 것 자체에 대해서 별 감흥을 느끼지 못했던 것 같다(기억이 없는 걸 보면). 근데 이제 뭘 해야 할지 모르게 되었다. 생각해 보면 그만큼 친한 친구가 한 명도 지척에 남지 않았기 때문에 새로운 대체 친구(?)를 찾아야겠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근거: 2학기가 시작되고 나서 처음 눈에 띈 친구들을 보고 쟤네와 꼭 친해져야겠다는 생각을 함. 꼭 걔네여야만 했던 이유: 없었음. 그냥 교실 한쪽에서 하늘색 악보 파일을 펼쳐놓고 바이올린을 키던 L과 C가 눈에 띄었을 뿐이었다. 학교에 바이올린을 가져와서 연주하고 있으면 그야 눈에 띄겠지.

 

L과 C는 친구들이 있었던 1학기 때까지만 해도 존재조차 몰랐던(미안) 애들이었다. 그리고 그 녀석들은 오타쿠였다. 2D 오타쿠. 그렇게 눈에 띄어버린 그 친구들과 친해지면서 나는 13년 인생(!) 처음으로 오타쿠 문화라는 것을 접하게 되었다. 그리고 아주... 깊게... 빠져들었다...

 

정말 한 몇 달 전까지만 해도 내 인생을 꼬아버린 건 날 오타쿠의 길로 인도한 그 친구들이라고 생각했다. 근데 그건 정말 오산이다. 절친들이 다 아주아주 멀리로 떠나버리고 새 친구가 절실히 필요했던 13살의 나는 그 친구들이 아니라 누가 앞에 나타났어도 쉽게 휘말려버렸을 것이다. 좀 노는 애들(?)이 그 날 눈에 띄었다면 나도 좀 노는 애의 길로 들어섰을 것이다. 재벌 친구들이 눈에 띄었다면 나도 그 쪽 문화에 물들었을 것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너무 당연하게도 내 인생을 꼰 건 L과 C나 오타쿠 컬쳐가 아니라 그냥 나 자신의 외로움이었을 뿐이다. 그게 오늘 내가 깨달은 것 1번이다.

 

그럼 2번은 무엇인가 하느냐면... 이것도 이야기가 길어진다. 그러니까 이건 다음 편에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