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현식 - 너를 안고 있으면
대학 입시를 할 때 얼마나 힘들었는지 떠올려 보았다
사실 15살 때부터 17살 때까지는 기억이 희미하다
가장 먼저 기억나는 건 입시할 때 탈모가 와서 머리숱의 반 정도가 사라졌다는 것이다(지금까지 복구 안 됨)
어떤 대학을 가고 싶다고 정한 후 5개월 정도 준비를 한 것 같고, 붙었다
그때까지의 힘들었던 것은 다 흐릿하게 잊혔고, 새로운 힘든 나날들이 시작되었다
정확히 10년이 지났는데, 지금이 그때와 많이 비슷한 것 같다고 느낀다
작년에 (옛)친구의 권유로 웹툰을 만들어본 후, 흥미를 느껴 혼자 본격적으로 구직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8개월 정도 공부를 하고, 포트폴리오를 만든 끝에 글 작가로 한 작품에 이름을 올렸다(실제로 하는 일은 원작 웹소설의 각색, 시나리오 작성, 그림 콘티 제작이다)
중학생 때부터 즐겨 읽던 수많은 만화책을 낸 출판사에 작가 등록이 되었고, 예술인고용보험에 들었다
작품이 런칭되면 예술인 등록을 할 수 있다
아무튼 직전의 일기를 읽어보았는데 입시생 때처럼 정해지지 않은 불확실함이 많이 힘들었던 것 같다
지금은 물론 잘 기억나지 않고, 지금 일하는 것만이 너무 힘들다
개구리 올챙이 적 잊는다는 속담이 어울릴까,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라는 격언이 어울릴까
시나리오를 쓰기까지는 한 시간이면 충분한데, 그림 콘티를 그리려고 클립스튜디오 창을 켜면 거기서부터 막막해진다
펜을 잡을 수 없기 때문이다
내가 자가진단할 수 있는 가장 유사한 증상은 불안이고, 그에 대해 내가 스스로 처방할 수 있는 유일한 해결 수단은 비상 불안약이다
이것을 불안이라고 가정한다면 이 불안은 콘티를 그릴 수 없다, 콘티를 그릴 수 없다면 납품을 할 수 없다, 그렇다면 수습을 해야 한다 라는 생각에서 온다고 추정된다
콘티를 그릴 수 없는 것은 내가 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하고 싶지 않은 것은 정말로 할 수 없는 사람이고, 그래서 많은 것들을 하지 않고 살아왔다
(비록 그 뒤에 많은 층위의 사연이 겹쳐져 있을지언정)학교를 가고 싶지 않아 가지 않았고, 대학 수업에 들어가고 싶지 않아 들어가지 않았다
그 뒤에 따라오는 후폭풍들은 항상 어떻게든, 거의 운명적이라고 해도 될 만한 방식으로 해결되었기 때문에 나는 하지 않는 것에 거리낌이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무엇이 다른가
만에 하나 일이 어떻게든 해결되지 않았을 경우, 나를 바로 구제해줄 가족의 경제력이라는 안전망이 사라졌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그 문제의 상당 부분은 내가 타고난 몸, 몸이 지배하는 정신, 내가 원인인 탓에 다시 마음이 위태로워진다
사실 나는 당장 담당 PD와의 카카오톡 연락창을 켜 이번 주 콘티 납품을 할 수 없다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러지 않고 있는 것은 사람이라면 응당 가지고 있는 두려움 때문이다
이 두려움은 신체화되어 지금도 내가 펜을 잡지 못하게 하고 있다
그리고 나는 오늘 내가 가지고 태어난 몸의 병이 자율신경계 이상을 만들어 감정의 신체화를 더욱 극대화한다는 전문가의 말을 듣고 왔다
그러면 다시 화살은 나에게로 돌아온다
하지만 온몸 세포 사이사이에 헐겁게 자리한 결합조직을 내 손으로 고치거나 뜯어 버릴 수는 없고
안고 가는 수밖에 없어, 나는 조금이라도 더 낫게 있을 수 있는 장소를 찾아 영원히 돌아다녀야 한다
그 과정에서 나는 무엇과 몇 번 부딪혀야 하는지
하고 싶지 않아서 하지 못하는 일을 얼마나 마주하고 내 성정에 대해 좌절감을 느껴야 하는지
이 경향을 고치기 위해 지금껏 몇 년이나 애썼지만 전혀 나아지지 않았다는 사실에 대해서도 그 어떤 실마리도
아무것도 알지 못해 지금도 흰 화면을 바라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