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에 가장 인기 있었던 드라마는 미생이었다. 난 그맘때 한드에 엄청 빠져 있었기 때문에 당연히 미생도 꾸준히 챙겨봤다. 그리고 엄청 팬이 됐다. 16살이었는데, 어느 날은 삼촌이 나보고 직장인 얘긴데 그게 재밌어? 라고 물어봤다. 그 때는 그냥 취향을 무시당한 기분이라서 짜증만 내고 말았다. 근데 방금 우연찮게 미생 ost를 듣고 뭔가 생각났다. 2014년은내가 중졸 검정고시를 보는 해였다. 장그래는 검정고시를 본 고졸이었다. 당연스럽게 비주류로 살던 장그래가 선택의 여지 없이 그 안으로 편입하려 들며 벌어지는 일들이 메인 플롯이다.
내가 중학교를 자퇴한 이유는 별 게 아니다. 도저히 학교 사회 안에 녹아들 수가 없어서, 거기서 오는 괴리감이 너무 힘들었다. 라인을 타야 하는 것, 무조건 한 자리를 잡아야 하는 것, 상명하복식 구조 모두 전혀 처음 접해보는 것이었다. 무엇보다도 다른 사람들은 그게 당연한 듯 익숙하게 생활하는 것이 너무 당황스러웠다. 차라리 학생들 모두가 똑같이 당황한상태였다면 나만 그런 게 아니구나, 하면서 함께 헤쳐나가려고 할 수도 있었을 거다. 물론 다른 친구들도 속으로 적응하기어려웠는지는 내가 알 수 없지만??
그리고 난 내가 당연히 초등학교와 같은 재단의 중학교로 진학할 줄 알았다. 근데 떨어졌다. 가장 친한 친구들은 이민을가긴 했지만, 그 다음으로 친하고 익숙한 친구들은 다수가 그 학교로 올라갔다. 사실 거의 특정한 세네 중학교 정도로 파가 갈렸다. 아무튼간에 난 갑자기 외딴 곳에 뚝 떨어졌다. 그래서 학교에 적응하지 못하는 게 크게 실감나는 순간마다 저절로 뒤를 돌아보게 됐다. 만약에 내가 성적이 좀 더 좋았다면 그 학교에 갈 수 있었을까? 아니면 애초에 동네 초등학교에다녔다면 미리 익숙해질 수 있지 않았을까? 갓 초등학교를 졸업한 열네 살이 그런 생각을 해야 한다니 정말 갓한민국이다.
적응하지 못하겠는 것, 근데 다른 애들은 다 잘 하는 것 같다는 생각, 자꾸 드는 소용없는 후회 같은 것들이 복잡하게 뒤섞여서 날 점점 끌어내렸다. 그렇지만 학교인데 뭘 어쩌겠어? 그냥 어떻게든 돌파해야지. 라고 생각했다.
근데 다리를 다쳐서 학교를 두 달 쉬다 보니까 뭔가 산뜻했다. 학교를 가지 않는 동안에도 뭔가를 배울 수 있고 해낼 수 있었다. 그럼.. 어쩌면.. 학교는 가지 않아도 되는 거 아닐까?! 그러니까 세상이 쫌 달라보였다. 갑자기 선택지가 하나 추가된느낌이었다. 그 전까지 학교 밖 청소년이란 건 내 세상에 없는 존재였다. 다른 세계 얘기 같다고 생각한 것도 아니고, 애초에 그냥 몰랐다. 열네 살의 손이 닿는 곳에는 그런 이야기가 없었다.
자퇴라는 옵션이 있다는 걸 알게 되자 학교를 견디는 일이 좀 더 힘들어졌다. 가지 않아도 되는 학교에서 힘들어하고 있는것 자체가 바보 같았다. 마음을 굳히고 나서 다른 사람들의 말은 전혀 듣지 않았다. 정말 하나도 신경이 안 쓰였다. 그런걸 고려할 만한 상황이 아니었다. 지금 당장 이걸 벗어나는 게 급선무였다. 그래서 학교를 나오는 전날까지 친구들에게 언질을 주는 것도 까맣게 잊고 있었다. 역지사지로 생각해 보면 정말 당황스러웠을 것 같다.. 어느 날 그냥 얘가 걸어들어오더니 짐을 싸길래 어디 가냐고 했더니 자퇴를 한다니?? 그래도 친구들은 아이스크림을 하나씩 입에 물고 나와 날 배웅해줬다. 미안하고 고맙다 친구들아...^^
검정고시를 두 번 보고 대학에 가겠다고 생각했다. 대학도 학교긴 학교지만 적어도 원하는 걸 하면서 버티는 건 훨씬 수월할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비주류에서 주류로 편입하려다가 실패해서 다시 비주류로 돌아가고, 또 다시 주류로 편입하려고 하는 상태가 되었다.
미성년자. 아직 완전한 인간이 되지 못한 사람. 그 때부터 미성년자라는 단어의 사용을 철저하게 기피했다. 주류를 따라막힘없이 흘러가야 성공적으로 완전한 인간이 된다는 것 같아서 싫었다. 미생. 아직 살아있지 못한 자. 윤태호 아저씨는우리 모두는 미생이라고 말한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인간은 절대 완전한 시기에 도달할 수 없다. 고졸 무경력 사회성제로 낙하산 장그래가 메인스트림에 섞이기 위해 애쓰는 내용일 줄 알았더니 사실은 모두가 똑같이 애쓰는 중이라는 거였다. 만 십구 세를 넘겼든 아니든 우리는 다 불완전하다. 근데 자기들끼리 스스로 완전한 인간임을 선언하고 나한테는 넌불완전한 인간이라고 이름 붙여주는 게 정말 재수없었다. 내가 뭘 느끼고 있는지 말로 설명할 수 있게 되자 상당히 개운해졌다. 중학교 생활 1년 반 동안 외로움과 싸워왔는데 사실은 나만 멍청했던 게 아니라 다들 멍청했다는 걸 아니까 기분이풀렸다.
난 아직도 누군가가 싫어질 때 자동적으로 이런 생각을 떠올린다. 저 사람도 저 사람 나름대로 뭔가와 싸우고 있을 테니까감안해주자. 그래서 반대로 남이 나를 이해해주지 못할 때 속상해지기도 하지만 그것도 감안하자고 스스로 되뇌인다. 남을 이해하는 것도 저 사람한테는 싸움일 수 있으니까.
남자 작가가 썼고 남자가 주인공이고 신파고 어쩌고 저쩌고한 이유로 미생을 좋아했단 걸 인정하기 쪽팔린다. 근데 여기에서 정도는 슬쩍 얘기해봐도 되지 않을까? 내 인생의 힘들었던 한 단락을 끝막아준 드라마다. 그건 부정하지 않기로 했다.